신병하

영화 《접시꽃 당신》의 주제가를 함께 만든 신병하-임선경님 글

musicanova 2012. 3. 29. 15:49

이보희 주연으로 만든 영화 <접시꽃 당신>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시인 도종환의 이야기다.

그의 아내가 병들어 죽었을 때 그는<접시꽃 당신>이란 시집을 발표해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죽어가는 아내를 지켜보는 남자의 마음을 아련하게 쓴 그의 시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급기야는 그와 그의 아내의 러브 스토리가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는데 그 영화가 촬영되기 전에 나는 작곡가 신병하씨로부터 주제가 가사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이미 곡이 만들어져 있는 악보에 가사를 붙이는 작업이었다.

신병하씨와 나는 개인적으로 오누이처럼 지낸 사이다.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내게는 그와의 추억들이 가슴에 많이 남아 있다.

그를 만난 것은 윤시내가 무명으로 그의 그룹 보컬리스트로 활약하던 시절이었다.

그의 음악을 듣기 위해 나는 소공동의 스카이라운지 휘시즌을 자주 찾았다.

결국 그의 그룹을 취재하기에 이르렀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각별한 인연을 계속 이어갔다.

신병하씨는 가요보다 영화음악 쪽에서 더 유명한 사람이다.

강수연 주연의 <씨받이>로 크게 알려지기 시작해서 수없이 많은 영화와 TV 드라마에서 음악을 담당했다.

90년대 초에는 각종 영화제에서 영화음악부문 대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가 만든 작품들을 어떻게 일일히 나열하랴.

아무튼 그는 만드는 작품마다 독특한 그의 색깔로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신병하씨에게 작사 부탁을 받았을 때 내게 의문이 하나 생겼다.

시인의 스토리에 작사가가 가사를 쓴다?

시인이니 자신이 직접 가사를 붙여도 될텐데...

그러나 내 의문과는 달리 신병하씨는 내게 잘라 말했다.

"시와 노래는 다르잖아"

하긴 시를 쓰는 것보다 노랫말에 더 예민한 면이 있기는 하다.

아마도 운율과 발음에도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리라.

나는 시집을 읽고 또 읽고....이미 내가 영화의 주인공이 된듯이 악보에 가사를 붙여나갔다.

 

《접시꽃 당신》

 

그리도

창백히 웃더니

우리 님 먼 길을 가시었네

못다한 이야기 아쉬워

차라리

할 말을 접었는가.

꿈같던 그 세월

뒤돌아보며 뒤돌아보며

노을진 길에도

슬픈 내 님은 꽃으로 피는가

가만히 잠이 든 자리에

조그만 접시꽃 피어있네.

 

주제가는 권영후라는 가수가 불렀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홀로 남아 애달프게 사랑을 노래하던 시인 도종환은 그 후에도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으리라.

아이러니하게도 죽은 사람의 슬픔을 훔쳐보며 나와 함께 <접시꽃 당신>을 만들던 신병하씨가 그 여인처럼 떠났지만.

신병하씨와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 이미배의 <갈등>도 함께 만들었다.

내 얘기를 그들이 나눴는지 한 번은 신병하씨와 만나기로 한 카페에 그녀가 함께 나왔다.

"뵙고 싶어서 따라왔어요."

아주 좋은 인상을 그녀에게서 받았다.

그녀의 노래처럼 부드럽고 감미로운 느낌이었다.

사람 사이에 인연은 늘 그렇게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