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하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 《소나기》/ 신병하

musicanova 2012. 3. 29. 15:20

1987년 방영된 MBC베스트셀러극장 소나기

연출: 최종수

극본: 장선우

원작: 황순원

음악: 신병하

출연 : 조은정, 김석지,고두심, 심양홍,정진강

어릴적 나의마음 한켠에 늘 자리잡고 있던 하나의 추억 '소나기'

그것이 나 하나만의 추억인양 아쉬워하고 또 아쉬워 했었다.

근 20여년전의 감동을 함께 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는것은

나에게 조금은 안도감이 생기기도 했었다.


소녀는 개울에다 손을 담그고 물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서는 이런 개울물을 보지 못하기나 한 듯이. 벌써 며칠째 소녀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물장난이었다.

(중략)

다음 날부터 좀더 늦게 개울가로 나왔다.

소녀의 그림자가 뵈지 않는 날이 계속 될수록 소년의 가슴 한구석에는 어딘가 허전함이 자리 잡는 것이었다.

(중략)

"너, 저 산 너머에 가본 일 있니?'
벌 끝을 가리켰다.
"없다,"
우리, 가보지 않으련? 시골 오니까 혼자서 심심해 못 견디겠다."
"저래 뵈도 멀다."
"멀면 얼마나 멀기에? 서울 있을 땐 사뭇 먼 데까지도 소풍 갔었다."
소녀의 눈이 금새 '바보, 바보' 할 것만 같았다.

(중략)

"저게 뭐니?"
"원두막"
"여기 참외, 맛있니?"
"그럼. 참외 맛도 좋지만 수박 맛은 더 좋다."
"하나 먹어 봤으면."
소년이 참외 그루에 심은 무밭으로 들어가 , 무 두 밑을 뽑아 왔다.
아직 밑이 덜 들어 있었다. 잎을 비틀어 팽개친 후, 소녀에게 한 개 건넨다.
그리고 이렇게 먹어야 한다는 듯이, 먼저 대강이를 한 입 베물어 낸 다음, 손톱으로 한 돌이 껍질을 벗겨 우쩍 깨문다.
소녀도 따라 했다.
그러나, 세 입도 못먹고,
"아, 맵고 지려."
하며 집어던지고 만다.
"참, 맛없어 못 먹겠다."
소년이 더 멀리 팽개쳐 버렸다. 산이 가까워졌다. 단풍잎이 눈에 따가웠다.


(중략)


소년은 매일같이 개울가로 달려와봐도 소녀의 모습은 뵈지 않았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운동장을 살피기도 했다.

남 몰래 5학년 여자 반을 엿보기도 했다.

그러나, 뵈지 않았다,

그날도 소년은 주머니 속 흰 조약돌만 만지작 거리며 개울가로 나왔다.

그랬더니 그쪽 개울둑에 소녀가 앉아있는 게 아닌가. 소년은 가슴부터 두근 거렸다.
"그 동안 앓았다."
어쩐지 소녀의 얼굴이 해쓱해져 있었다.
"그 날, 소나기 맞은 탓 아냐?"
소녀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었다.
"인제 다 났냐?"
"아직도......"
"그럼, 누워 있어야지."
"하도 갑갑해서 나왔다 .... 참, 그 날 재밌었어... 그런데, 그 날 어디서 이런 물이 들었는지 잘 지지 않는다."
소녀가 분홍 스웨터 앞자락을 내려다본다. 거기에 검붉은 진흙물 같은 게 들어 있었다.
소녀가 가만히 보조개를 떠올리며,
"그래 이게 무슨 물 같니?"
소년은 스웨터 앞자락만 바라다 보고 있었다.
"내, 생각해 냈다.

그 날, 도랑을 건너면서 내가 업힌 일이 있지?
그 때, 네 등에서 옮은 물이다."
소년은 얼굴이 확 달아오름을 느꼈다.


(중략)

(중략)


그 날 밤, 소년은 자리에 누워도 같은 생각뿐이었다.

내일 소녀네가 이사하는 걸 가보나, 어쩌나. 가면 소녀를 보게 될까 어떨까. 그러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는가 하는데,
"허, 참,세상일도..."
마을 갔던 아버지가 언제 돌아왔는지,
"윤초시 댁도 말이 아니야. 그 많던 전답을 다 팔아 버리고, 대대로 살아오던 집마저 남의 손에 넘기더니,

또 악상까지 당하는 걸 보면..."
남폿불 밑에서 바느질감을 안고 있던 어머니가.
"증손이라곤 계집애 그 애 하나뿐이었지요?"
"그렇지. 사내 애 둘 있던 건 어려서 잃어버리고..."
"어쩌면 그렇게 자식 복이 없을까."
"글쎄 말이지. 이번 앤 꽤 여러 날 앓는 걸 약도 변변히 못 써 봤다더군.
지금 같아선 윤초시네도 대가 끊긴 셈이지....

그런데 참, 이번 계집앤 어린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아.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않아?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고........."